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열황후 감씨 (문단 편집) == 연의 == [[삼국지연의]]에서는 감부인과 미부인 둘 다 유비의 정실로 그려지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왕이나 세력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이 정실을 둘 이상 두는 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서유기]]에서는 '삼궁 황후와 육원 비빈'이라고 해서 왕은 정실 셋에 후궁 여섯을 둘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 나오고, 한반도의 고려 태조 [[왕건]]이 호족을 포섭하기 위한 결혼동맹으로 정실 여럿을 포함한 아내를 스무 명 넘게 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장 조선 후기에 지어진 [[구운몽]] 안에서의 설정도 양소유가 2처 6첩을 거느린 것으로 나온다.] 유비의 다른 처자들이 모두 생략되고 감부인과 미부인 둘 다 진작부터 유비의 부인인 상태로 나와서 여포에게 붙잡히는 역할을 대신해준다. 조조가 관우를 사로잡으면서 두 부인도 같이 사로잡히지만 조조가 관우의 항복을 받으며 두 부인의 안전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가면서 두 부인을 데리고 같이 돌아간다. 참고로 정사에는 관우가 유비의 아내들을 잘 돌봐주었다거나 유비에게 돌아오면서 유비의 아내들을 데리고 와주었다거나 하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조운이 장판파에서 감부인을 구출하는데 감부인은 유선을 데리고 있지 않았고 미부인이 유선을 데리고 있었다. 정사에서는 장판파에서 감부인과 유선이 동시에 언급되기 때문에 감부인이 유선을 데리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감부인이 유선의 생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사 쪽이 자연스럽다. 정사와 다르게 감부인이 죽은 다음에야 유비가 손부인과 결혼한다. 훗날 유선이 제위를 계승하자 감부인을 소열황후로 추서하고, 미부인도 황후로 추서한다. 정사에서는 감부인만 황후로 추증되었고 미부인은 황후로 추증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